색소포니스트 서보경의 새 앨범
Another Season
색소포니스트 서보경의 새 앨범 [Another Season]은 새롭게 맞이한 삶의 역동적인 흐름을 차분히 정돈한 감정과 리듬의 기록이자, 음악이 어떻게 삶의 구성을 닮아갈 수 있는지 들려주는 증거다. 점차 익숙해지는 관계와 일상, 매일의 루틴에서 피어나는 감정, 미처 몰랐던 균형의 감각이 바탕이 되었다. 이 앨범에는 무언가 더하거나 빼려는 흔적이 없다. 대신 악기들의 한 음, 한 음이 필요한 자기 자리를 찾아 흐르며 삶과 계절을 노래한다.
서보경은 이전에 발표한 두 장의 주요작을 통해 재즈 음악가로서 진지한 욕심과 현실의 삶을 대하는 따뜻한 시각을 모두 들려준 바 있다. 2020년 1집 [내면의 영화]에서는 피아노 트리오를 포함한 쿼텟 구성으로 전통적인 재즈의 서사와 감정을 충실히 펼쳤고, 이듬해 EP에서는 기타를 포함한 발라드 사운드로 삶의 내밀한 정서를 포착했다. 이번 정규 2집 [Another Season]은 두 작품의 사이에서, 그가 새롭게 겪고 있는 삶의 구조와 감정을 조금 색다른 언어로 정돈했다. 재즈의 송폼과 솔로 파트의 구조와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이를 더욱 일상적인 호흡과 정서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직접 경험한 결혼이라는 커다란 사건 이후 변화한 일상, 현재의 관계 온도, 모든 것에 익숙해는 데 걸린 시간이 악기들의 호흡 속에 배어 있다. 감정을 밀도 있게 다루되 너무 무겁지 않고, 삶을 재현하려고 하되 설명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편성이 조금 색다르다. 색소폰–기타–베이스로 이루어진 트리오다. 드럼이 비워진 여백이 존재하지만 결핍이나 허전함은 전혀 없다. 김강빈의 베이스가 리듬의 척추를 탄탄하게 떠받치고, 지난 EP부터 함께한 안재진의 기타는 정교한 연주와 섬세하고 다층적인 사운드 연출로 소리의 색채를 매만진다. 서보경은 이번 앨범에서 소프라노 색소폰을 중심에 놓았다. 중후한 테너 색소폰을 일부 덧대 스펙트럼을 넓히면서도 소프라노가 감정의 기류를 이끈다. 채도 짙은 고음역으로 날카롭게 쏘기보다 가볍고 활력있게 움직이며 장난스럽게 재잘거린다. 특히 이번 앨범은 녹음 감도가 매우 섬세하게 설계되어 악기의 숨결, 음색의 여운, 그리고 연주자 사이의 미세한 호흡이 함께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공간에 머무는 잔향과 음 사이의 고요까지 음악으로 끌어안아 깊고 정밀한 청각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서보경의 이번 앨범은 분명 자전적이다. 각 곡의 제목은 그가 실제로 최근에 겪은 결혼생활 속 시간들—분주하고 활기찬 아침(‘Good Morning’),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하루(‘24시간이 모자라’), 오롯히 함께하는 것만으로 소중한 관계(‘My Best Friend’)—등이 곳곳에 담겨 있다. 다만 서보경의 사적인 감정이나 난해한 재즈 앨범으로서의 배타적인 취향의 기록인 것이 아니라, 치열한 일상을 지나치며 흔적을 남긴 나날이 유연하고 짜임새 있는 연주에 담겨 있다. 세심한 디테일이 귀엽고 흥미롭게 숨어 있기도 하다. 6번 트랙 ‘You Can Learn to Surf’의 경우, 헤드 멜로디 사이에 놓인 워킹 베이스 위로 기타가 마치 파도처럼 넘실대며 미끄러지는 비브라토를 만든다. 섬세한 관찰력으로 일상을 환기하고, 직관적인 제목과 음악으로 보컬 앨범이었다면 쓰였을 가사의 설명을 기악 연주로 대체한다. 이에 따라 제목의 이미지를 상상하며 연주를 들을 때 보컬 앨범을 듣고 있는 것과 같은 같은 매력이 드러난다. 사람이 내게 말을 걸듯 음악이 이야기가 되었다가 풍경이 되고, 풍경이 다시 음악이 된다.
타이틀곡 ‘연속성의 마무리’는 앨범의 철학을 나타낸다. 2009년 작고한 화가 신성희의 연
작 <연속성의 마무리>가 모티프를 제공했다. 작품의 프랑스어 원제 ‘Solution de continuité’는 의학, 철학의 관용 표현으로 ‘연속성의 단절’을 의미한다. 신성희는 잘라내고 꿰매는 방식의 회화 작업을 통해 단절이 영원한 끝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연속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 바 있다. 이 개념은 서보경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일상과 관계 속 조심스럽게 맞춰 나간 감정의 리듬이 잠깐의 단절 이후 다시 이어 붙인 연속의 서사로 살아났다. 홀로 걷는 베이스, 묵직하고 신중한 테너 색소폰 라인, 이를 유려하게 받아내는 기타—셋의 교차는 단절과 봉합을 반복하며 성장하는 유기적인 삶의 형태와 닮았다.
[Another Season]은 선명한 완결성을 갖춘 서사이지만 계절처럼 끝맺음 없이 순환을 거듭한다. 마지막 트랙 ‘Be Kind to Yourself’가 마친 뒤 처음으로 돌아가 첫 트랙 ‘Good Morning’을 이어 들어도 그 흐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말하자면 굳이 지난 계절에 매여 있거나 다음 계절을 허황되게 약속하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의 [Another Season]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지금 내가 머무는 자리, 이미 와 있는 계절, 그 안에서 조용히 자라나는 삶을 이야기한다. 삶이 있어야 할 곳에 보이는 풍경,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의 온도가 천천히 익어가는 소리. 서보경은 그것을 조용하고, 정확하고, 아름답게 불어낸다.
/ 대중음악평론가 정병욱 (Byungwook Chung)
[Tracks]
1. Good Morning (06:42)
2. 24시간이 모자라 (03:29)
3. My Best Friend (04:36)
4. Alone Together (05:08)
5. 연속성의 마무리 (05:42)
6. You Can Learn to Surf (05:46)
7. Be Kind to Yourself (05:41)
[Credits]
All Composed by 서보경 Bo-kyung Seo
Produced by 서보경 Bo-kyung Seo
Arrangement by 서보경 Bo-kyung Seo
Soprano Saxophone & Tenor Saxophone 서보경 Bo-kyung Seo
Guitar 안재진 Jaejin Ahn
Bass 김강빈 Vinnie Kim
Recoding 이건민 Gunmin Lee @Gibro Studio
Mixing &Mastering 이재혁 @Cross Dissolve
Artwork 최종원 Jongwon Choi
Photo 이승률 Seungryul Lee @Studio MokHa
Special thanks to 나의 편이자 쉼터, 그루터기 김남기
후원- 경기도미래세대재단
Another Season by 서보경 [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