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슈베르트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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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양장본
184쪽
126*191mm
ISBN : 9791195949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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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생애를 바라보는 이들의 해묵은 편견과 클리셰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에 이어 도래한 왕정복고 시대의 억압적 분위기가 지배하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탁월한 감수성과 “음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많은 명곡을 창조해낸 프란츠 슈베르트가 음악 역사상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31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슈베르트의 작품 세계는 여러 가지 편견 속에서 일부 측면만 부각되어왔고, 그의 전기들 또한 클리셰로 뒤덮여 있다.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의 음악학 교수 한스-요아힘 힌리히센은 이를 두고, “슈베르트는 19세기 후반에 도시성벽이 철거되고 링슈트라세(순환도로)가 새로 들어서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옛 빈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엄격한 통제와 검열이 판을 치던 사회 속에서 정치적인 것을 멀리하고 소시민적 안락함을 추구하던 이른바 ‘비더마이어’적 풍조를 대표하는 예술가라는 이미지가 따라붙은 것이다.

슈베르트와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이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수십 년이 지나 당시를 회고하면서 어느 정도 미화를 한 탓도 있을 것이다. 특히 빼어난 문학적 감수성을 발휘한 ‘가곡 작곡가’라는 슈베르트의 명성이 너무나 큰 나머지, 교향곡, 현악 4중주, 피아노 소나타 등에서 남긴 불멸의 기악 유산은 오랫동안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다.

 

친구들의 힘을 믿고 프리랜서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하다

슈베르트가 태어난 1797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이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걸출한 음악가들의 활동 무대로 각광받는 음악의 도시로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이른바 ‘빈 고전주의’ 시대를 지나,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열린 빈 회의 이후 밀어닥친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함께 음악계 또한 새로운 토대 위에 놓이게 되었다. 1800년 이전의 음악 생활이 대체로 귀족이 주도하는 소수 중심의 활동이었다면, 이제 음악은 시민계급의 주도 아래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을 무대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1790년대에 귀족의 체계적인 비호 덕분에 비교적 일찍부터 견고한 명성을 얻었던 베토벤은, 이미 안정적인 작곡가로서 기존 제도의 붕괴를 무사히 견뎌낼 수 있었다. 반면 슈베르트가 음악적으로 성장한 시기는 정확히 반나폴레옹적인 왕정복고의 전성기에 해당했고, 빈 소시민계급 출신인 슈베르트는 비더마이어 시대의 가정 중심의 음악 문화와 더불어 성장했다. ” 한마디로 말해, “베토벤의 빈은 슈베르트의 빈이었지만, 슈베르트의 빈은 베토벤의 빈이 아니었다.”이런 음악 문화 속에서 아버지와 형들에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운 슈베르트는 그 재능을 인정받고 음악 영재들을 위한 빈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그는 요제프 폰 슈파운을 비롯한 여러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둔 뒤에도 이 교우 관계는 꾸준히 지속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슈베르트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모임이 계속 생겨났다. 이런 네트워크는 그의 길지 않았던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교사를 천직으로 알며 자란 슈베르트가 작곡가의 길로 나서기로 결심했던 것도 이러한 친구들의 존재 덕분이었다. “슈베르트는 여러 그룹과 모임 덕분에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생활해나갈 수 있었다. 부모에게서 독립한 첫해만 해도 그는 돈 한 푼 내지 않고 쇼버와 같이 지냈다. 슈베르트가 온전히 홀로 산 것은 세 번에 불과한데,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씩이었다. 안정적인 교사직을 과감히 포기할 때에도, 그는 틀림없이 이 네트워크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보호막이 되어주리라고 확신했을 것이다.”슈베르트의 앞 세대 음악가인 모차르트는 연주회와 레슨을 하거나 궁정에서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고, 베토벤도 젊은 시절 연주 활동을 하면서 마지못해 다른 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프리랜서 작곡가라는 모델을 조금씩 성공적으로 실현해나갈 수 있었던 최초의 작곡가에 해당한다.” 몇 차례에 걸쳐 잠깐씩 맡았던 “에스테르하지 백작의 음악 가정교사 자리를 제외하면, 그가 부모에게서 완전히 독립한 이후로 작곡이 아닌 다른 수입원에 의존한 적은 없었다.”

 

위대한 가곡의 그늘에 가려진 슈베르트의 기악적 유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슈베르트는 위대한 ‘가곡 작곡가’였다. 기숙학교 시절부터 작곡을 시작한 그는 유독 가곡에서만큼은 처음부터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장르와 달리 슈베르트가 가곡에서 그렇게 일찍부터 성숙한 결과물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무엇보다 그의 월등한 시적 재능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이미 기숙학교 시절의 친구들도 이 재능을 알아보았다. 슈베르트는 시의 형태로 접하게 된 거의 모든 것을 음악으로 창작했다.” 벌써 10대 후반에 작곡한 유명한 괴테 가곡 《실 잣는 그레트헨》과 《마왕》을 통해 감정의 흐름과 격정을 설득력 있게 펼쳐냈던 슈베르트는 10여 년 뒤 발표한 두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를 통해 “가곡 예술의 정점에 도달”했다.그렇지만 슈베르트는 가곡 외에도 초창기부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했다. “어린 초보 작곡가는 당연하다는 듯이 처음부터 모든 장르를 적극적으로 다루었다. 도이치 번호 10번여까지의 작품들만 보더라도 피아노곡, 가곡, 4중주 혹은 5중주 편성의 현을 위한 실내악곡, 교향곡, 오케스트라를 위한 서곡, 연극을 위한 서곡, 미완성으로 남은 오페라 《거울의 기사Der Spiegelritter》(D. 11) 등이 있다.”어린 시절부터 슈베르트는 집안의 현악 4중주단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다. 아마도 이런 가정에서의 실내악 활동이 초기 실내악곡이 탄생한 배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초기 교향곡과 서곡 등은 기숙학교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소규모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작품에서 대중을 겨냥한 대작으로

1824년 봄, 슈베르트는 무척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매독 때문에 오랫동안 빈 종합병원에서 수은 치료를 받느라 몸이 허약해지고 머리까지 빠졌다. 친구들의 모임도 프란츠 폰 쇼버 같은 핵심 멤버가 외국에 나가 있는 통에 와해될지도 모를 지경에 처해 있었다. 더구나 야심 차게 준비하던 오페라 《피에라브라스》의 공연이 무산되면서 빈 오페라계에 진출하려던 꿈도 꺾이고 말았다. 하지만 실망도 잠시, 슈베르트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기악’ 작곡으로 눈을 돌렸다. 더 나아가 아예 과거와는 다른 수준에서 작곡에 접근했다. 초기에 “친구와 가족을 위해 작곡했던 실내악곡이라든가 기숙학교 오케스트라나 하트비히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했던 관현악 서곡과 초기 교향곡”을 넘어 훨씬 더 광범위한 대중을 겨냥한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전문적인 직업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슈베르트는 현악 4중주 d단조(《죽음과 소녀Der Tod und das Madchen》, D. 810)를 비롯한 실내악곡을 거쳐 ‘대교향곡’을 향해 나아간다. “이 계획을 슈베르트는 교향곡 C장조 《그레이트》(D. 944)로 실현했다.  나름 성공적이었던 여섯 개의 초기 교향곡 이후 처음으로 (유일하게) 완성된 교향곡이었다.”가곡뿐만 아니라 기악에서도 불후의 대작을 내놓은 작곡가로서 슈베르트의 가치를 일찍부터 알아본 이들은 학자나 비평가가 아니라 후세대 작곡가들이었다. “1839년에 슈베르트의 형 페르디난트에게서 C장조 교향곡 《그레이트》를 발견한 사람은 로베르트 슈만이었고,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와 프란츠 리스트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슈베르트 음악에 매료되었다. 슈베르트를 평생 동안 깊이 존경했던 요하네스 브람스는 그의 작품을 일찍 접한 덕분에 베토벤의 그늘에서 마침내 벗어날 수 있었다.”더 나아가 슈베르트의 방식은 현대 작곡가들에게까지 영감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장 바라케, 루치아노 베리오, 볼프강 림, 디터 슈네벨, 한스 첸더 같은 유럽 작곡가들이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구조화하는 슈베르트의 새로운 방식에 깊이 매료되었고, 미국 작곡가 모턴 펠드먼은 자신이 열렬한 슈베르트 신봉자라고 고백했다.”지난 1994년 국제 프란츠 슈베르트 연구소의 ‘프란츠 슈베르트 대상’을 받았고, 지금은 『슈베르트 전망Schubert: Perspektiven』이라는 저널의 공동 편집인을 맡고 있기도 한 슈베르트 전문가 힌리히센 교수가 집필한 이 평전은 낭만적 이미지로 점철된 채 편파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슈베르트를 재조명했다. 슈베르트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 편견과 오해를 걷어내는 한편 지금까지 간과되어왔던 다양한 장르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작곡가 슈베르트의 인생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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